보광학교는 1925년 5월에 고운사 지방학림의 후신으로 설립되었다. 1917년 설립된 고운사 지방학림은 1922년 안동포교당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학생 수가 증가하여 校舍를 확장하는 등 활발한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매년 6,500원의 운영 경비를 부담하던 고운사는 1925년 1월에 이르러 운영난을 호소 하였다. 결국 폐교 위기에 직면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면민대회가 개최되었 다. 이 대회에서 ‘고운사 본·말사와 안동면민계가 공동으로 운영할 것’을 결의하 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지방학림은 동흥강습소를 인수하고 5월에 이르러 보광학교로 전환하였다. 보광학교는 설립 이후 사립보통학교로 승격하고자 인가원을 당국에 제출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보광학교는 사립보통학교로 인가받기 위하여 보통학교 학 제를 준수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야학을 설립하고 학예회 및 석가탄신 축제 개최 등의 교육 및 문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학교 운영 주체인 안동면 민계 교주와 교직원들은 안동의 여러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이로 말미암 아 안동장학단, 안동청년동맹, 신간회 안동지회 등이 보광학교에서 각종 강연회 및 웅변회 등을 개최하였다. 특히 신간회 안동지회는 보광학교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이처럼 보광학교는 교육 공간을 넘어 각종 문화 행사 및 사회운동 단체의 총회 장소로 사용하는 등의 문화·사회운동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1927년 10월 고운사는 본·말사 임시총회에서 보광학교 교주회를 탈퇴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를 저지하고자 면민대회를 개최하여 보광학교와 연대하던 안동장 학단, 안동청년동맹, 신간회 안동지회에서 교섭위원을 파송하였다. 보광학교 교 직원과 학생들은 고운사로 찾아가 단식투쟁과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그해 12월 고운사는 교주회를 탈퇴하였다. 1928년 2월에 안동면민대회에서 3차 교주 30인을 선임하였으나 보광학교 횡령사건, 교주들의 방임, 당국의 폐교 강요 등 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운영을 하지 못하고 1928년 4월에 폐교되었다. 이후 보광학교 운영주체 일부가 교육계를 설립한 뒤 보광학교를 인수하여 1928년 5 월에 화산학원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화산학원은 교장 권현섭의 노력과 교직원 들의 보조, 안동 주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조선 국문과 역 사를 가르쳤다. 나아가 화산학원은 1949년에 권현섭의 노력으로 안동중학교로 승격되었다. 보광학교는 4가지 특성이 확인된다. 첫째, 안동의 지도층들이 학교의 운영주 체로 참여하였다. 둘째, 보통학교의 학제를 따라 운영하였다. 셋째, 안동의 여러 단체의 총회 장소 및 행사 장소로 사용되었다. 넷째 안동면민대회에서 보광학교 에 관한 결의안이 많았다. 이 4가지 특성으로 말미암아 당시 안동주민들은 보광 학교를 ‘조선인이 운영하는 안동의 유일한 준공립보통학교’로 인식하였을 것으 로 보인다. 나아가 안동의 교육 및 문화 활동을 전개하여 ‘안동 민중을 위한 학 교’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보광학교는 당시 일제 당국으로부터 억압받던 교육과 문화의 창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Ⅰ. 머리말 1
ⅠⅡ. 설립 과정 5
Ⅰ1. 고운사 지방학림의 보광학교 전환 5
Ⅰ2. 학제 전환과 사립보통학교 인가 노력 10
Ⅰ1) 학제와 교과 과정의 변화 10